1. 줄거리 요약 – 죽지 못하는 인간, ‘미키’의 존재론적 여정
영화 〈미키 17〉은 인간의 복제와 존재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미래 식민지 개척이라는 SF 배경 속에 풀어낸 작품이다.
봉준호 감독의 연출 아래, 로버트 패틴슨은 ‘복제 가능한 인간’이라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캐릭터 ‘미키’를 연기한다.
이야기는 인류가 지구를 떠나
우주 공간의 새로운 행성을 식민지로 개척하는 ‘뉴 콜로니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시작된다.
이 임무에는 ‘익스펜더블(Expendable)’이라 불리는 직책이 있다.
말 그대로 소모용 인간.
너무 위험해서 일반인이 접근할 수 없는 환경,
죽음을 전제로 하는 임무,
이런 일들은 모두 이 익스펜더블, 즉 복제 가능한 인간 ‘미키’가 맡는다.
‘미키’는 죽으면 뇌 데이터를 백업해 다시 육체를 복제해 재활용된다.
죽음은 리셋일 뿐, 그의 삶은 끝없이 이어지는 루프다.
이제 미키는 7번째 복제체, 즉 ‘미키 7’이다.
하지만 어느 날, 모두가 그가 죽었다고 생각했을 때
그는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오고, 동시에 ‘미키 8’이 탄생해버린다.
복제는 하나의 ‘자아’만이 존재한다는 전제를 깬 것.
‘두 명의 미키’가 동시에 존재하게 되면서
영화는 단순한 SF에서 존재의 충돌, 인간성과 자유의지에 대한 논쟁으로 확장된다.
이중의 ‘미키’는 단지 복제된 데이터가 아니다.
서로는 서로를 보며 묻는다.
“나는 진짜인가?” “너와 내가 같다면, 누가 더 먼저일까?” “죽지 않아도 되는 나는, 여전히 미키인가?”
동시에 그들을 둘러싼 식민지 사회는 불안정하다.
정치적 권력, 식민지 주민의 불신, 군사적 통제,
그리고 인간 외 생명체의 위협까지 겹쳐
두 ‘미키’는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
그리고 서로의 존재를 지우지 않기 위해 싸우게 된다.
그러나 이 싸움은 단순한 육체의 전투가 아니다.
그건 자기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존재의 투쟁이다.
그리고 관객은 질문하게 된다.
“과연 복제된 삶에도 영혼이 있을까?”
2. 감상평 – 기억과 육체의 분리를 말하는 봉준호의 SF 미학
《미키 17》은 단순한 SF가 아니다.
이 영화는 ‘복제 인간’이라는 클리셰를 활용하면서도
그 속에 존재론적 질문, 사회적 풍자, 인간성에 대한 철학적 고민을 녹여낸다.
그 방식은 전형적인 봉준호 감독 특유의 방식이다.
“나는 누구인가?”를 되묻는 정체성의 SF
미키는 계속 죽고, 계속 살아난다.
그는 육체적으로는 죽음을 겪지만, 기억은 이어진다.
하지만 그 기억이 자신이라는 보장은 없다.
‘미키 6’와 ‘미키 7’이 동시에 존재하게 되었을 때,
그들은 서로를 보고 말한다.
“나는 너고, 너는 나야. 그런데 왜 나는 죽어야 해?”
이 장면은 마치 거울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나는 나지만, 나 같은 존재가 또 있다면
‘내가 나일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은 무엇일까?
이 영화는 이런 질문을 강하게 던진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육체로만 정의하는가?
아니면 기억, 경험, 감정의 연속성으로 정의하는가?
봉준호 감독은 이 질문을 미키의 혼란과 선택을 통해 정면으로 보여준다.
시스템 안의 인간, 아니 인간 같은 소모품
‘익스펜더블’이라는 개념은 사실상
인간을 시스템 안의 ‘도구’로 다룬다는 설정이다.
영화는 이 구조를 날카롭게 풍자한다.
미키는 자신의 삶을 결정할 수 없다.
그는 언제 죽을지 모른다.
그는 선택하지 못하고, 늘 명령받는다.
그러나 살아 있는 ‘두 명의 미키’는 다르다.
그들은 처음으로 ‘자기결정권’을 가지려고 한다.
이 지점은 현대 사회의 노동자, 시스템 속의 개인,
그리고 대체 가능한 인간에 대한 메타포로 작용한다.
“당신이 필요 없어진다면, 새로운 당신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가?
봉준호 감독은 ‘복제’라는 소재를 통해
‘대체 가능한 인간’이라는 공포를 말하고 있다.
봉준호의 철학이 SF의 껍데기를 뚫고 나온다
이 영화는 어디서나 보던 할리우드식 SF가 아니다.
이건 분명히 **‘봉준호 영화’**다.
- 어두운 유머
- 인간의 이중성
- 체제에 대한 저항
- 다층적 감정선
- 소외된 존재들의 서사
이 모든 것이 〈설국열차〉와 〈옥자〉, 그리고 〈기생충〉에서 우리가 보았던
봉준호의 스타일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만든다.
미키는 단순한 주인공이 아니다.
그는 현대인의 분신이다.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고, 시스템에 의심을 품고,
삶에 목적을 찾으려 하지만 계속 미끄러지는…
그렇기에 이 영화는 복제를 다룬 SF임에도,
어딘가 굉장히 우리 자신의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3. 이 영화를 꼭 봐야 하는 이유 – SF의 탈을 쓴 인간의 초상
철학적 SF의 정수 – “나는 살아 있는가?”라는 원초적 질문
〈미키 17〉은 단지 SF 장르에 머물지 않는다.
이 영화는 ‘존재’라는 철학적 개념을 영상 언어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당신이 ‘나’라는 걸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죽지 않는 것’이라면…
당신은 몇 번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
봉준호는 이 영화로 우리에게
“당신은 몇 번째 자신으로 살아가고 있나요?”라는 질문을 던진다.
새로운 키아누 리브스가 아니라, 새로운 로버트 패틴슨
로버트 패틴슨은 이 영화에서 완전히 새로운 얼굴을 보여준다.
그는 더 이상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뱀파이어가 아니다.
〈더 배트맨〉을 통해 배우로서 재도약한 그가,
이번엔 복제 인간의 허무, 두려움, 정체성 혼란을
정제된 연기로 그려낸다.
한 배우가 스스로를 연기하는 듯한,
자기와 싸우는 연기는 깊은 몰입을 만든다.
그의 눈빛은 계속해서 바뀌고,
“나는 진짜야”라는 말이 점점 허공으로 날아갈 때,
관객은 자기 존재에 대해서도 의심하게 된다.
‘봉준호’라는 이름 하나로 충분한 이유
〈설국열차〉로 SF와 사회비판을 결합했고,
〈옥자〉로 생명윤리를 다뤘으며,
〈기생충〉으로 전 세계를 놀라게 한 봉준호 감독.
이제 그는 〈미키 17〉을 통해 존재론까지 건드린다.
그가 만든 세계는 늘
감정과 메시지가 함께 숨 쉬는 세계다.
그리고 그건, 지금 우리에게
단순한 오락 이상의
사유의 시간을 건네준다.
마무리하며 – 나는 지금, 몇 번째 삶을 살고 있는가
〈미키 17〉은 화려하거나 폭발적인 SF가 아니다.
그건 오히려 잔잔하고 철학적인 메아리처럼 우리를 따라다닌다.
이 영화는 복제를 말하지만, 결국 인간을 이야기한다.
죽을 수 없고, 죽으면 다시 살아나고,
살아 있는 동안에도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 채 헤매는 존재들.
그건 어쩌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